社名에 '증권' 뗀 파격 실험…증권계 변신 주도
35년 은행맨서 '증권CEO'로
삼성생명 상장 주관 등 'IB딜' 성사…임금 피크제 도입도 화제
'친한파' 만드는 민간외교관
태권도평화봉사단 총재 맡아 각국 돌며 한국 문화 전파
"휴원이 니 주판이 그게 뭐꼬? 내일 당장 바꿔 와라."
1969년 3월 경북 포항 동지상고의 한 교실.선생님의 질책에 신입생 이휴원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상고 필수과목인 주산시간에 그가 꺼내 놓은 주판이 문제였다. 급우들은 모두 날렵하게 생긴 주판을 들고 왔는데 그의 책상엔 구멍가게에서나 봄직한 구닥다리 주판이 올려져 있던 것.
"구슬 한 알이 엄지손가락만한 낡은 주판이었어요. 시골 촌놈이던 저는 상고에 들어가면 주산을 배워야 한다는 것도 몰랐는데 포항시내 친구들은 이미 학원에서 웬만큼 실력을 쌓고 왔더군요. 선생님이 "놓기를…" 하고 운을 뗀 뒤 백만 단위까지 부르는데 아주 황당하더군요. 허허."
주산 실력이 모자라면 2학년 진급이 안된다는 선생님의 엄포에 그는 여름방학 때 비지땀을 흘리며 결국 자격증을 따냈다. '산골 소년' 이휴원(57)은 졸업 후 35년간 뱅커를 거쳐 이제는 신한금융투자 사장으로 자본시장의 첨병에 서있다. 고교 동기인 조현철 대명리조트 사장,하인국 하나로저축은행장 등과 종종 만나면 지금도 학창시절 얘기를 나눈다.
◆좌충우돌 산골 소년
이 사장의 뿌리는 최근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경주 양동마을이다. 500년간 양동마을을 지켜온 여강 이씨의 후손이다. 이태식 전 주미대사,이동우 청와대 정책기획관 등이 집안 사람들이다.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과 함께 회재 이언적 선생 기념사업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어린 시절 그는 책상머리에 앉아 책을 들여다 보는 타입은 아니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길 더 좋아했다. 소년시절 활달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은 훗날 금융인으로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넥타이 매고 점잔빼는 것이 질색이었던 그는 특유의 친화력을 앞세워 고객들과 만나고 영업하는 게 너무 좋았다. 은행 출신인 그가 여의도 증권가에서 '텃세'에 시달리지 않고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다.
◆대부업무 맡으며 안목 키워
상고를 나와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곳은 한국신탁은행(현 하나은행)이었다. 신입행원 시절부터 주로 대부계에서 일했다.
"초년병이 대출업무를 맡은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금융인으로서 필요한 기본 덕목을 그때 확실히 배웠어요. 당시 기업 재무제표는 지금보다 투명성이 많이 떨어져 그대로 믿기엔 부족했죠.기업에 대출을 해 주려면 그 회사를 찾아가 보고 특히 사장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들어봐야 했습니다. 그때 사람 보는 눈을 키웠어요. 초짜 시절에 몸으로 체득한 것이 나중에 기업금융(IB) 담당 임원을 할 때도 그대로 통하더군요. "
영업 현장에서 한창 뛰던 그에게도 어느 날 위기가 찾아왔다. "7~8년차쯤 되니까 업무도 익숙해지고 자신감도 생겼지만 뭔가 가슴 한 켠이 허전한 느낌이 자꾸 들었어요. '잘하면 지점장 정도 하겠구나' 생각하니까 갑자기 의욕이 떨어지더군요. "
몇 달간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그에게 전기가 생겼다. 후발 시중은행으로 진입한 신한은행이 경력직원 모집에 나섰던 것.새로운 조직에서 다시 마음을 다잡고 뛰어보자는 생각에 그는 1982년 봄 주저없이 신한은행 창립멤버로 참여했다.
◆최장수 IB 부행장
신한은행에서도 특유의 적극성으로 영업현장을 누볐다. '하면 된다'는 '신한 DNA'와 딱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거침없고 괄괄한 성격 탓에 그에 대한 윗사람들의 평가는 극과 극으로 갈렸다. '일을 맡겨 놓으면 똑 부러지게 처리를 잘한다'는 좋은 평가도 많았지만 '상사에게 버릇없이 대드는 골치 아픈 후배'라는 질책도 적지 않았다. 윗사람에게도 직언을 서슴지 않던 스타일 탓이었다. 노조위원장을 맡은 것도 이런 성격과 무관하지 않다는 게 주위의 평가다.
그는 여의도기업금융지점장과 본점 영업추진본부장을 거쳐 2004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4년 넘게 IB담당 부행장을 지냈다. 전임 IB 부행장들이 1~2년 만에 다른 자리로 옮겼던 관행을 깼다. "우즈베키스탄 캄보디아 아제르바이잔 등 이머징 시장을 돌면서 경험을 많이 쌓았습니다. 돈이 된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했지만 리스크 관리에도 신경을 많이 썼어요. 기대수익률을 비정상적으로 높게 제시하는 사업은 꼼꼼히 따져보고 모두 거절했지요. "
당시 무위험자산으로 평가되며 짭짤한 수익원으로 통했던 부채담보부증권(CDO)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을 판매하지 않은 것도 그의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덕분에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증권맨으로 제2의 출발
은행에서 IB업무를 익힌 그는 지난해 신한금융투자 사장으로 변신했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 것이란 주위 예상과 달리 그의 행보는 빨랐다. 자본시장법 시행에 맞춰 지난해 9월1일 국내 증권업계에서 처음으로 회사명에서 '증권'을 떼냈다.
IB 부행장 시절 인맥을 바탕으로 사장이 직접 뛴 결과 신한투자는 삼성생명 상장 공동주관,대우인터내셔널 매각자문 등 굵직한 IB 딜을 잇따라 따냈다. 해외주식 매매 부문에서도 거래 국가를 25개국으로 늘려 시장 점유율 1위를 굳혔다.
그는 요즘 직원들에게 '4-2-2-2'를 강조한다. 금융투자회사가 천수답식 경영에서 벗어나 안정적으로 성장하려면 사업별 수익 비율을 위탁매매는 40%로 줄이고 자산관리,트레이딩,IB를 각각 20%씩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이 사장은 "성장의 열쇠는 자산관리 영업에 달려 있다"며 "IB와 트레이딩 사업부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개발하고 역량 있는 자산관리 인력이 고객들에게 이를 제대로 전달하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한투자의 새로운 실험
지난 6월 이 사장은 업계 처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새 실험으로 증권가에 화제를 몰고 왔다. 53세가 되는 해에 임원으로 승진하지 못할 경우 상무 대우를 받는 계약직으로 전환하거나 명예퇴직과 임금피크제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한 것이다. 내년 7월부터 적용되는 임금피크제는 기본급을 대폭 줄이는 대신 같은 직급보다 성과급 지급률을 3%포인트 높이고 58세까지 정년을 보장하는 것이 핵심이다. 또 팀별 업무평가를 개인 성과급에 일부 반영하는 등 성과급 체제도 손질했다. 개별 성과급이 개인별 경쟁만 부추겨 조직 전체의 성과로 연결되지 못한다고 판단해서다.
"중장기 관점에서 자산관리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존 평가체제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이 사장은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에 집착하지 말고 긴 호흡으로 착실하게 기본을 다져가자고 직원들에게 강조하고 있다"며 "2015년이면 1등 금융투자회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간 외교에도 앞장
이 사장은 지난 7월 여름휴가를 아프리카에서 보냈다. 놀러 간 것이 아니라 세계태권도평화봉사재단 총재 자격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짐바브웨를 다녀왔다. 작년 9월 출범한 이 재단은 세계 각국을 순회하며 현지인들에게 태권도와 한국의 전통음악,무용 등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봉사단체다. 그는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와의 인연으로 이 단체를 맡게 됐다.
이 사장은 "태권도 시범과 예술공연을 결합해 무대를 화려하게 꾸며 해외에서 아주 인기가 많다"며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가 높아졌음을 확인할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소개했다. 그는 "IB 부행장 시절 자주 해외출장을 다니며 민간외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친한파'를 한 명이라도 더 만드는 것이 진정한 글로벌 네트워크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박해영 기자 bon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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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083142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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