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들이 세운 사회적 기업 '딜라이트'
제품 표준화·유통 개선… 기존 제품값의 20~30%로
지난 15일 경기도 부천시 가톨릭대학 창업보육센터 107호실. 33㎡(10평) 남짓한 이 사무실에선 보청기 제조회사인 '딜라이트'의 직원들이 온라인 주문품의 배송 주소 등을 점검하느라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흔한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의 사무실 풍경처럼 보였지만,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CEO인 김정현(24·가톨릭대 경영 4년)씨를 비롯, 7명의 직원이 모두 대학생인 점이었다.
작년 9월 문을 연 딜라이트는 이른바 '착한(사회적) 기업'이다. 돈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돈도 벌고 사회적·공익 목적을 위해 사업을 한다. 딜라이트는 개당 150만~200만원에 달하는 보청기 가격 부담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의 청각 장애인을 위해 34만원짜리 초저가 보청기를 개발해냈다.
국내 시장에서 디지털형 보청기는 가장 싼 것도 90만원을 넘고, 딜라이트가 내놓은 기능(2채널 방식)을 담은 제품은 대부분 150만원이 넘는다. 그런데 대학생들이 힘을 모아 기존 제품의 20~30%대의 초저가 보청기 제품을 내놓은 것이다.
보청기엔 문외한이던 대학생들이 초저가 보청기에 도전한 것은 2008년 초로 거슬러간다. 이들은 인도 아라빈드 병원이 맥도날드 방식을 응용, 표준화와 대량생산을 통해 국제가격의 10분의 1에 저소득층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공 수정체를 제작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보청기도 가능할 것 같았다. 사람의 귀가 저마다 다르게 생겼지만 표준형은 있을 것이라고 이들은 생각했다. 국내시장의 70%를 차지하는 귓속형 보청기의 경우 해외와 달리 표준형 모델(SCIC)은 거의 찾을 수 없었다. 표준형 모델은 일일이 귓본을 떠서 제작할 필요가 없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 등에서는 월마트에서도 보청기를 파는데 우리의 유통 구조는 달랐다. 딜라이트의 대학생 직원들은 무작정 보청기 회사를 찾아가 "대학생인데 보청기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며 정보를 얻기도 했다. 지금도 딜라이트 사무실 벽면에는 '외워 버리자'는 문구와 함께 '귀걸이형' '귓속형'의 보청기 해부도가 붙어 있다.
초저가 보청기를 공급하려면 생산원가·유통비용·이익을 모두 줄여야 했다. 이익은 스스로 감수하면 되지만 나머지는 지식과 기술이 필요했다. 미국·독일·영국·캐나다 등의 30여개 보청기 회사와 이메일로 가격 협상도 해봤다. 결국 국내 외국계 보청기 회사의 공장과 중소 토종 업체에 생산을 맞기기로 했다.
또 전문가 도움을 받아 보청기 표준모델의 자체 디자인에도 성공해 비용을 줄였고, '선(先)주문 후(後)생산' 방식으로 재고 비용을 제로(0)로 줄여 공급 가격도 30% 이상 낮췄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작년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제조·판매 허가를 받았다.
시장개척은 복지관이나 복지재단을 통해 저소득층 노인에게 보청기 선물을 하려는 기업이나 기관을 찾아낸 뒤 초저가 보청기를 제안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그동안 이렇게 100대를 팔았고, 이달 들어선 온라인 주문을 통해 150여대 주문도 성사시켰다. 모두 8500만원의 매출이다.
"보청기가 없어 34년간 외출할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해왔는데, 이젠 어머니를 해방시켜 드렸습니다." 기초생활수급자인 30대 청각장애인 남성 고객이 보내온 글이다. 딜라이트 대학생들이 가장 보람을 느끼는 사연이다.
지난 7월부터 딜라이트에 합류한 오주현(20·한양대 신방 2년)씨는 본인도 청각장애 3급이다. 오씨는 "청각장애인인 나야말로 보청기의 애환을 너무 잘 안다"면서 "싸고 질 좋은 보청기 혁명을 우리가 해 내겠다"고 말했다.
☞착한 기업(사회적 기업)
수익 창출보다 취약계층 보호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 시장(市場) 원리로 사회적 가치를 달성하려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시도다. 스스로 돈을 버는 점에서, 기부에 의존하는 자선단체와도 다르다.
부천=이인열 기자 yiyul@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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