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에 대한 한 연극연출가의 쓴소리다. 민간 자율을 표방하며 2005년 8월 탄생한 예술위가 흔들리고 있다. 출범 5년 만이다. ‘존재의 이유’ 에 대한 회의마저 일고 있다. 해임처분 1심 재판에 승소한 2대 김정헌 위원장이 1일 출근하며 ‘1기관 2수장’이란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사실 예술위는 그간 바람 잘 날이 드물었다. 위원장이 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나기 일쑤였고, 최종 의사 결정기구인 ‘10인 위원회’와 실무를 맡고 있는 사무처 간의 갈등도 증폭돼 왔다. 왜 이런 일들이 계속될까. 공연계 전문가들은 예술위의 태생적 한계까지 거론하고 있다.
◆소속 위원이 위원회 상대로 소송도=예술위는 1년에 약 1000억원 정도의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 산하 예술분야 최대 지원 기관이다. 1973년 설립된 문예진흥원이 모태였다. 문화부가 임명한 원장 한 명이 주요 의사를 결정하는 독임제 체제였던 문예진흥원과 달리, 예술위는 10인 위원회(위원장 포함)의 합의제로 운영된다. 특히 현장 예술가들을 직접 위원으로 참여토록 했다. 문학·음악·국악·연극·무용 등 장르별로 한 명씩 예술가들이 임명됐다. 출범 당시 “한층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지원 체제”란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업무 처리 과정에선 위원들간의 ‘장르 이기주의’가 불거졌다. 행정 경험이 전무한 예술가들의 아마추어리즘 등이 도마에 올랐다. 일례로 2007년 5월, 소속 위원인 한명희씨가 예술위가 주최한 ‘원 월드뮤직 페스티벌’에 대해 공연 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기도 했다. 예술위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한 첫 ‘사건’이었다. “‘10인 위원회’의 최종 결제 없이 진행했다”는 게 소송의 이유였다.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김병익 초대 위원장이 중도 사퇴했다. 이후에도 예술위 내부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래픽 참조>
◆“차라리 진흥원 시절로 돌아갔으면”=‘10인 위원회’는 합의제 체제다. 가장 민주적인 결정 방식일 수 있지만 현실에선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위원은 “9명이 찬성해도, 1명이 격렬하게 반대하면 사업이 무산되곤 했다”고 전했다.
비효율성도 지적돼 왔다. 신규 사업를 통과시키기 위해선 사무처-10인 위원회 1차 회의-심의 위원 추천-심의 위원 회의-10인 위원회 2차 회의 등 최소 4개월 이상을 소요해야 한다. 예술위 장병태 노조위원장은 “현재 체제는 10명의 원장을 모시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차라리 과거 문예진흥원 시절로 돌아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라고 꼬집었다. ‘10인 위원회’중 한 명인 조운조(이화여대 한국음악학과 교수) 위원은 “합의제가 이상적이지만 개인적으론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사공이 많아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예술위의 경영상태는 낙제점을 받아왔다. 기획재정부가 16개 연·기금 운영 공공기관에 대해 실시하고 있는 경영평가에서 2005년 이후 5년 연속 최하위권(D등급)을 기록했다.
기금 고갈은 더욱 심각하다. 2004년 5000억원에 이르던 문예진흥기금은 현재 3500억원으로 줄어들었다. 이 기금에서 매년 400억원 가량이 예술위 예산으로 편성돼 돈이 빠지는 반면, 충당되는 돈은 없다. 산술적으론 10년 뒤엔 예술에 지원해 줄 돈 자체가 없어진다는 얘기다.
◆“중복 기관 하나로 해야”=기관 통합설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문화콘텐츠진흥원·영상산업진흥원·게임산업진흥원 등이 하나로 합쳐져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탄생한 것처럼 여러 예술 지원 기구를 통합해 예술위 구조에 변화를 주자는 의견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예술위·예술경영지원센터·한국예술교육진흥원 등은 중첩된 업무 영역이 많다. 꼭 세분화할 필요가 있는지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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